[가우디 강의] 구엘 공장단지와 구엘 공원: 20세기 유토피아

[가우디 강의] 구엘 공장단지와 구엘 공원: 20세기 유토피아

 

가우디를 후원했던 에우세비 구엘은 신흥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우디가 지은 집은 대부분 부르주아의 집이었다. 초기 대표작인 이 저택은 당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1878년 3월 15일, 가우디는 그해 가장 낮은 성적으로 건축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구도심 유태인이 모여 살던 동네에 사무실을 개업했고, 에스테베 코메야스에게 그해 5월 파리 만국박람회에 놓을 상품진열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진열대는 아마 가우디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첫 작품 중 하나였다.
에우세비 구엘은 당시 스페인 벨벳 생산을 독점하던 직물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직물 기계와 제품을 살펴보려 만국박람회장을 찾았던 그는 스페인 전시관에 있던 한 장갑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에우세비 구엘은 카탈루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가우디를 수소문하여 찾아왔고, 이후 가우디에게 10여개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며 끝없는 신뢰를 보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가우디가 구엘을 찾은 것이 아니라, 구엘이 가우디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풋내기 건축가의 가구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당시 스페인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지역사회 중심에 서게 된 ‘인디아노’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사업가 특유의 유연한 사고를 가졌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귀족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들은 새로운 것과 진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에우세비 구엘의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이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당시 건축계는 절충주의가 주류였지만 이미 곳곳에서 역사양식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새 시대의 예술은 언제나 어떤 새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잔잔하게 파동치는 밀라 주택의 입면이나, 성가정 성당에서 사용된 구조체, 산타 테레사 학교 복도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단순함이 드러난다. 단순성은 젊은 날 그의 건축노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개념이었다. 길에서 보면 근엄한 듯 보이는 이 저택은 여러모로 고전건축과 다르다. 가우디는 이곳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격은 역동적인 변화를 통해 지금의 지위에 오른 부르주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