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강의] 구엘저택: 돌 건축의 단단함을 벗다.

[가우디 강의] 구엘저택: 돌 건축의 단단함을 벗다.

 

가우디의 건축세계.

구엘 저택: 돌 건축의 단단함을 벗다.

 

에우세비 구엘 이 바시가루피(Eusebi Güell i Bacigalupi, 1846 – 1918)

 

에우세비 구엘은 누구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가우디 건축을 받아들이고 후원하게 했을까? 구엘은 스페인 신흥 부르주아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우디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부르주아의 집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인 것이 구엘의 건물이다. 가우디의 초기 대표작인 구엘 저택은 당시의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모범이다.

 

  • 1878년, 구엘이 가우디를 만나다

가우디 연구에서 1878년과 1910년은 매우 중요하다. 1910년은 파리 보자르 미술협회에서 가우디의 첫 해외 전시가 열린 해로 그의 방대한 자료들이 종합적으로 취합되었다. 하지만 보다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은 1878년이었다. 안토니 가우디는 서류상 1878년까지 바르셀로나 보병여단에 복무 중이었다. 병역 중에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건강상 이유로 상당기간 정상복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78년 3월 15일, 가우디는 그해 가장 낮은 성적으로 간신히 건축학교를 졸업했고, 바르셀로나의 구도심 유태인이 모여 살던 동네 입구에 처음으로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장갑가게를 운영하던 에스테베 코메야스에게 그해 5월 개최될 파리 만국박람회에 보낼 상품진열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사무실 근처에 있던 에우달드 푼티의 공방에서 그것을 제작했다. 그가 졸업한 것이 한 달 남짓이니, 이 진열대는 아마 가우디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첫 작품이었을 것이다.

에우세비 구엘은 당시 스페인의 벨벳 생산을 독점하던 유명한 직물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생산기계와 생산품을 살펴보려 그해 파리 만국박람회장을 찾았던 그는 스페인 전시관의 한 장갑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에우세비 구엘은 당시 카탈루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가우디를 수소문하여 찾아와 안토니오 로페스 후작을 위한 가구 제작을 맡겼다. 구엘의 장인인 안토니오 로페스는 그해 후작에, 불과 3년 후에 스페인 귀족 서열 중 가장 높은 ‘그란 데 에스파냐’ 지위에 오르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구엘은 대학을 졸업한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풋내기 건축가에게 이 왕국에서 가장 유력한 이의 가구를 맡겼고, 이후로도 그에게 10여개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가우디가 구엘을 찾은 것이 아니라, 구엘이 가우디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1878년, 그는 가우디의 진열대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당시 스페인에는 ‘인디아노el indiano’라 불리는 사회계층이 급부상했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인도라고 착각했던 기회의 땅에서 대단한 부를 얻어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험한 뱃길을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귀족 자제들은 정치를 배웠지 장사를 하진 않았기에, 인디아노는 대부분 본디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온 막대한 부를 통해 그들은 지역사회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들은 사업가 특유의 유연한 사고를 가졌고, 기존 귀족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시대의 역동성을 통해 지금의 지위에 오른 그들은 새로운 것과 변화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구엘 백작의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이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당시 건축계 주류는 여러 역사양식을 모방하는 절충주의였지만 이미 곳곳에서 고전양식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탈루냐 지역에서는 자연주의Naturalismo가 유행했고, 많은 공공건축물들이 이 양식으로 지어졌다. 가우디의 건축이 장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가우디는 자연주의를 표방한 동시대 건축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상당히 절제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건축 노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양식을 모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장식을 갖게 하며, 단순한 양식은 좋은 구조를 가진다. 미학적 구조는 다양한 자원과 풍성한 해법으로 그 건축을 해명하며, 그 자체로 대상을 만족스럽게 만든다. 말하자면 그 대상이 하나의 실체가 되는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존재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기존 양식을 모방하면서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더 많은 장식을 갖게 될 뿐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가우디가 말하는 ‘단순한 양식’이다. 밀라 주택의 잔잔하게 파동치는 입면이나, 성가정 성당에서 사용된 구조체, 바트요 주택의 다락방, 산타 테레사 학교의 복도에서는 고전건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장식 요소들이 상당 부분 제거되어있다. 가우디는 이런 단순한 양식을 통해 구상을 더욱 간명하게 드러낸다. 가우디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갖는 특성을 ‘색채el color와 운동el movimiento’이라고 꼽았는데, 이는 ‘추상화된 차가운 백색과 굳건한 안정감을 추구하는 고전주의 건축과는 반대편에 서있다. 가우디 건축은 역동성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런 가치는 역동적인 변화를 체험한 구엘과 같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참고도서-
<장식>,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Gaudi 1928>,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 프란세스크 폴게라 지음, 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