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강의] 밀라주택: 새로운 도시, 새로운 건축

[가우디 강의] 밀라주택: 새로운 도시, 새로운 건축

 

가우디의 건축세계
밀라 주택: 새로운 도시, 새로운 주거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넷 Antoni Gaudí i Cornet(레우스, 1852 – 바르셀로나, 1926)

 

가우디 건축에 합리성이 있을까? 역동하는 형태와 복잡한 기하학, 기괴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 그의 건축은 육중한 돌 구조물에 역동하는 생명체의 부드러움을 덧입힌다. 한없는 자유 속에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건축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첫 작품인 마타로 협동조합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인 성가정 성당에 이르기까지, 그의 건축은 언제나 합리적인 구조체계에 뿌리내리고 있다. 합리적인 구조체계에 바탕한 건축에 대한 실마리는 그의 젊은 날 수첩에서부터 엿보인다. 가우디 건축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감각의 산물이다. 이성과 감성으로 빚은 이 건축이 하나의 건축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밀라 주택이다. 그가 민간에서 수행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이 주택은 그의 유작인 성가정 성당과 더불어 이성과 감성을 하나로 종합하려던 가우디 건축의 모범이다.

 

 

◆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넷
안토니 가우디는 20세기 초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건축가다. 그가 지은 건축물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7개라 하니, 그와 같이 많은 이의 관심을 받는 건축가는 드물다. 안토니 가우디는 1852년 6월 25일 카탈루냐주 타라고나 지방의 도시 레우스에서 태어났다. 대를 이어온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타라고나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후 건축학교 진학을 위해 카탈루냐의 수도인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그리고 1926년 6월 10일 비운의 전차사고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이 도시에 거주했다. 가우디는 ‘독창성la originalidad이란 그 근원origen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고, 일생동안 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혹자는 가우디의 초기 작업들을 보고 그를 아르누보 계열의 건축가로 분류하곤 하지만, 밀라 주택이나 성가정 성당 같은 후기 건축은 이런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저명한 가우디 연구자 조지 콜린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의 건축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 1878년-1882년, 도시적 작업에 집중한 시기: 건축학교 졸업 후 비센스 주택을 시작하기까지
● 1883년-1900년, 절충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장식 작업에 집중한 시기: 비센스 주택, 구엘 별장 수위동, 엘 카프리쵸, 구엘 저택, 성가정 성당, 아스토르가 주교관, 보티네스 주택, 베예스구아르드, 칼벳 주택
● 1900-1917, 자신만의 건축을 시작한 시기: 구엘 공원,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 성가정 성당의 부속학교, 구엘 공장단지 안의 성당
● 1918-1926, 새로운 기하학에 집중한 시기: 성가정 성당

 

밀라 주택은 바르셀로나의 신시가지 에이샴플라 안에 지어진 가우디의 세 번째 주택이자, 민간에서 수행된 마지막 작품이다. 이 주택은 점차 완성되어가고 있던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세계를 보여주는 대표 건축물이다.

 

 

◆ 밀라 주택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주택은 파세이치 데 그라시아 길과 프로벤사 길의 모퉁이에 있는 페라 밀라 씨의 주택이다. 라 페드레라가 면하고 있는 파세이치 데 그라시아는 바르셀로나의 활기와 역동성을 대표하는 길이다. 가우디는 이 길에 4개의 건물을 설계했는데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지은 밀라 주택은 1879년 지베르트 약국, 1902년 토리노 바, 1907년 바트요 주택에 이은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 길에 가우디를 비롯한 모데르니스타 건축이 즐비한 것은 이 길이 당시 신흥 부르주아들의 부를 뽐내는 각축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주택과 관련된 간략한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 1905년. 밀라 부부가 이 대지를 구입.
● 1905년 9월. 페라 밀라가 기존 3층 건물의 철거를 위한 허가를 요청.
● 1906년 2월 2일. 가우디가 시처에 건축 허가를 위한 도면을 제출.
● 1911년. 밀라 부부가 이 주택으로 이사.
● 1909년. 허용된 건축 높이를 초과하여 시청이 원상복귀를 요청했지만 예외적인 기념비적 건물로서 인정받음
● 1914년. 가우디가 이 주택의 예술 가치를 인정한 증서를 요청.
● 1916년. 완성
● 1936년. 밀라 부부가 스페인 내전(1936-1939)을 피해 집을 떠남.
● 1939년. 프랑코의 부대가 도시를 입성한 후, 집으로 돌아옴.
● 1940년. 건축주 페라 밀라가 암으로 사망.
● 1947년. 페라 밀라의 아내인 로세르 세지몽이 건물을 매도.
● 1954년 5월 3일. 건축가 프란시스코 후안 바르바 코르시니가 밀라 주택의 다락을 개조하여 2층 아파트를 만듦.
● 1984년. 밀라 주택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

건축가 가우디는 이 새로운 도시의 건설을 이끌어낸 쾌적하고 건강한 주거 환경에 대한 당시의 근원적인 열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열망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그는 직교 체계에 근거한 고전적인 건축의 엄격함을 벗어난다. 밀라 주택의 평면과 단면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지만 마치 돌로 만들지 않은 것 같은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이 주택의 독창적인 형태는 새로운 도시, 새로운 주거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감성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은 당시 그에게 허락된 돌이라는 건축 재료를 가장 이성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시대의 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의 역동감과 생기를 담아내고 있다.

 

 

-참고도서-
<장식>,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Gaudi 1928>,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 프란세스크 폴게라 지음, 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